익숙한 것과의 결별/ 구본형/을유문화사/ 2011



 “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게 당황스러울 것이다. 너무나도 본질적인 질문이어서 더 그럴 것이다. 어떻게 대답 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을 정의하는 답변을 해야 하는데, 보통은 자기가 하는 일을 얘기하지 않을까싶다. 상황을 그려보면, 명함을 건네면서 저는 이러이러한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 홍길동입니다라고 할 것 같다. 이 답변 속에서는 나라는 고유한 존재보다는 회사의 이름과 직책이 상대방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이 회사의 직무와 직책으로 얘기되어지는 것이다. 몸 담고 있는 회사와 하고 있는 일이 진정 나를 말해주는 것인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를 말해 준다면,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무려 나를 ‘정의’하는 일이지 않은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보다 더 나라는 본질에 가까울 것이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은 나라는 본질에서 좀 더 먼 거리에 있을 것이다. 아예 하고 있는 일이 없어진 사람들은 어떨까?


 IMF를 겪으면서 한국에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조직 속의 나는 없어지고 헐벗은 나만 남았다. 나를 대신 얘기해주던 명함은 고사하고 매달 나오는 월급마저 없어져 버렸다. 그 당시 실직자들은 경제 생활의 주체로서의 나와 사회속에서 나를 동시에 잃어버리는 더블 공황상태에 내몰렸다. 평생을 몸담았던 회사에서 나가게 되면서  ‘나는 뭐였지?’나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지’라는 회한을 하지 않았을까. 조직을 벗어나 홀로된 사람은 이다지도 수세에 몰렸어야 했던가하는 상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위기의 시절이라 해도 회사내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이상은 회사에 존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대체 가능한 직무라면 언젠가는 평이한 시절이라도 그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새로운 직업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없어지는 직업들이 더 많이 존재한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대체가 되고 있고 전통적인 직업들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기업은 경영 활성화를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은 아니더라도 경영 효율을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변화를 줄 것이고 노동의 소멸은 자본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미해결과제이기 때문이다.


가치를 만드는 사람만이 언제나 필요한 사람이다. 그러나 가치의 개념은 언제나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싫든 좋든 세상은 변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변화를 생활의 기본 원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러므로 매우 중요한 깨달음이다. 아울러 그 변화의 방향을 알고, 자신의 욕망과 그것을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것은 바로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가치를 창출해야만 하는 시기가 점점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조직 속의 나로만 정의하지 말고 나만의 가치로 나를 정의해야 하는 것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이런 변혁의 시기에 자기 변화를 통해 가치를 만들어내라고 하는 책이다. 이 책의 키워드를 두가지를 뽑아내라면 ‘변화’와 ‘욕망’일 것이다. 나의 삶이 나의 욕망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바꾸라’는 말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해서 사람은 병이 생기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니까 변화를 통해 나의 욕망을 흐르게 하라고 말이다.


욕망이 없는 삶은 이미 속세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욕망과 화해하고 대항해 싸우는 수도사가 될 필요가 없다. 나는 욕망을 사랑한다. 욕망만큼 강력한 모티베이션은 없다.


아파트를 몇 채를 가지고 있고, 커다란 외제차를 몇 대를 굴리고, 권력을 휘두르는 것만이 욕망이 아니다. 자신의 바른 욕망은 공익에 기여하는 모습으로 실현이 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얼마나 열정이 불타오르겠는가. 가장 강력하고 지속적인 행동의 동기이기 때문이다. 


욕망은 절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집단과 사회가 강조된 대목이다. 이 속에는 개인에 대한 몫이 과소 평가되어 있다. 어쩌면 사회라는 개념 자체가 자유와는 적대관계에 있는 것인지 모른다......교육이란, 문명의 틀 속에서 주어진 사회적 전통에 아이들을 맞추는 것이다. 근신과 절제와 동일화가 사회의 미덕으로 강조되어 왔다.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지금까지 왔다. 사회적 전통에 맞게 학교를 졸업하고 직업을 가지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 어쩌면 교육과 나를 둘러싼 주위를 보면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길을 그냥 걷고만 있었던 것같다. 절제와 근신은 어떻게 보면 욕망을 누르고 누르다보니 내면의 깊은 욕망을 끄집어내는 것도, 욕망을 바로보기도 버거운지도 모르겠다.


개혁은 치명적 급소를 항상 노출시키고 있다. 그것은 바로 '혼돈과 혼란'이다. 변혁기의 특징인 카오스는 누구에게나 불편한 것이다. 그러나 개혁 세력은 그 속에서 희망을 보고, 기득권층은 그 속에서 절망을 본다.


 나의 욕망을 통해 동기부여하면서 변화를 시작하려고 할때,  혼란기를 지나가게 될 것이다. 불편한 변혁기는 일상으로 다시 회귀하려는 마음을 꿈틀꿈틀 불러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흔들리는 것을 두려하지 말자. 변혁기에는 카오스를 만나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우리가 대개의 경우 어제의 인간으로 남아 오늘을 다시 시작하는 이유는 생활의 불편을 감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관성과 같다. 움직이지 않는 물체는 그대로 있으려고 한다. 그러나 일단 구르기 시작하면 계속 구르려고 한다. 정지 상태와 운동 상태의 사이에는 단절이 있다. 이 단절을 넘어설 때 우리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이 단절은 뿌리깊은 '정지하고 싶은'관성을 극복함을 의미한다.


 정지해 있는 물체는 정지해 있으려고 하고 정지해 있는 사람은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한다. 익숙하고 안정화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안정화된 상태에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와 전자들의 세계를 보면 바닥상태의 전자는 에너지 레벨이 제로이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전자가 역동성을 띄기 시작할 때 비로서 에너지를 갖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립자들의 세계도 이럴진대 이런 미립자로 이루어진 사람이라고 다를 일이 있을까. 안정된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균형이 깨졌을 때, 변화가 일어난다. 


 언제나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내가 되고 싶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늘 더 좋은 존재가 될 수 있으며, 늘 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지금의 자기 자신보다 나아지려고 애쓰다보면, 나는 언젠가 나를 아주 좋아하게 될 것이다.


 내가 부잣집 아들이었다면, 내가 슈퍼맨이라면, 내가 상상을 초월할 천재라면...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존재로 있으면 좀 더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나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좀 더 나은 모습의 나를 꿈꾸는 것이었던 같다. 나 자신을 좀더 믿고 나를 사랑하면서 변화에 한발자국씩 다가선다면 내가 되고 싶었던 존재가 되는데 가까워지지 않을까. 저 유명한 스티븐 코비박사의 말을 빌려 다시 말하자면 관심의 원은 줄이고 영향력의 원을 넓히는데 힘쓰라는 말로도 표현 할 수 있을 것같다.


 불행은 자기 밖에서, 다른 사람이 가치 있다고 인정해주는 무엇인가를 행복의 조건으로 생각할 때부터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그는 돈을 많이 가지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또 직장에서 승진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말한다...자기의 욕망에 솔직하고,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세상이 부여하는 가치보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타인의 욕망을 자신에게 투사하지 말자. 앞서 말했듯이 나의 내면의 욕망이야말로 본질적이고 지속가능한 동력이다. 타인의 욕망은 그것이 이루어지더라도 결국 이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야라는 허기짐을 느낄게 분명하다.


 나는 나의 정의를 새롭게 하고 싶었다. 서두에 말한 것처럼 나는 누구인가가 이력서나 명함 속에 있는 나가 아닌 다른 근본적인 나로 말하고 싶었다. 지금도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지만, 그나마 근접한 것이  내안에 있는 욕망의 덩어리로 만들어진게 나라는 사람이 아닐까? 나의 타오르는 욕망은 내 삶의 비전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나의 삶을 아름답고 멋있는 것으로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내 안의 혁명이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익숙한 것과의 결별’ 프롤로그에 불타는 배위의 갑판에서 살기 위해 칠흙같은 바다로 뛰어들어 기적적으로 생환한 앤디 모칸이라는 선원의 이야기가 나온다. 불타는 갑판위에서 확실한 죽음을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바다로 뛰어들어 죽을지도 모르는 가능한 삶을 살것인가를  화두로 던지면서 이 책을 시작했다. 이제는 앤디 모칸이 아닌 내 차례인 것 같다. 나를 다시 정의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현실이라는 불타는 갑판에서, 내 욕망을 구명조끼로 삼아 가능한 삶을 위해 변화라는 바다에 몸을 던져야 할 시점이다. 문득 나이키의 카피가 떠오른다.

 “ JUST DO IT.”




Posted by 까망봉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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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경영학/ V/ 황금가지/ 2012


 프란시스 드 코폴라의 영화 대부를 보면 이탈리아의 시칠리아라는 한 섬에서 시작된 마피아가의 일대기가 그려진다. 매력적인 배우 알 파치노가 마피아의 대부로 성장하는 내용이 대부 1, 2, 3으로 이어진다. 보스에 대한 충성과 경쟁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 주위의 경외심으로 만들어지는 대부의 삶은 흥미롭고 어떤 점에서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대부를 보기 전에 영웅본색을 먼저 만나면서 갱들의 의리에 대해 동경을 먼저 가지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마피아 경영학이란 책은 내용과는 별개로 그런 영화 속의 그림들이 그려져서 냉큼 집어올렸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제목처럼 경영학이라기보다는 조직에서의 처세술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현대사회의 회사_조직_는 실상 마피아의 조직과 본질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의 군집에서 만들어지는 행동들은 어디서나 그 본질은 비슷하기때문이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제 1부는 자기경영, 2부는 타인경영, 3부는 그 밖의 문제로 나뉘어져 있다. 목차와 그 목차의 주제들을 보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무리 없이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한 문장들로 내용을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정상에 오른 이들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을 관리하는 기술의 달인이다. 이런 재능의 일부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며, 또한 경험을 통해 얻어낸 부분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하 것은, 세상의 혹자들이 지니고 있는 성공에 대한 날카로운 안목이 그런 재능의 일부에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보통 회사에서 직급이 올라가서 하게 되는 일은 매니저역할이다. 처음에는 소규모 팀을 매니지먼트하고 그 다음에 그 소규모 팀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되고 종국에는 회사 전체를 관리하는 역할로 차츰차츰 올라가게 된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져 있고 내 일을 위임해서 일을 처리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야 보다 많은 일들을 할 수가 있게 된다. 고로 성공_사업의 확장이나 세력의 확장을 포함한_은 다른 사람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성공한 기업체 간부들과 사업계 거물들의 경영 기술을 탐구하고 분석한 책은 시중에 넘칠 듯이 많이 나와 있다......이런 책들은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다. 즉 자본주의역사 속에서 어느 카르텔 이상으로 규모가 큰 동시에 수익성이 으뜸이고 생명력이 강한 카르텔을 지휘한 이들의 정제된 지식말이다. 이는 다름아닌 마피아, 라 코사 노트스라, 신디케이트, 모브, 아우트피트 등등의 십여가지 명칭으로 불리는 조직 범죄 집단이다. 


이 마피아 경영학은 “V”라는 익명의 저자가 쓴 글이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이런 조직에 몸담았던 이였으리라. 성공한 기업의 요인을 안으로, 안으로 파고 들어가보면 인간의 본성과 역학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있다. 성공한 기업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보통 기업의 수명이 10여년을 넘나든다고 할 때, 마피아보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오래된 조직이 얼마나 있을까. 이 책은 기업보다 오랜 세월 세력확장과 성공을 거듭한 마피아 조직의 지도철학과 수뇌부의 생각들을 담았다. 


 당신네의 임무나 우리네의 임무의 경우나 초심자가 지켜야 할 원칙은 간단하다. 입을 꾹 다물고 지낼 것. 항상 눈을 크게 뜰 것. 바지 지퍼를 잠글 것. 들은 대로 행동할 것.


책을 읽는 내내 나오는 얘기는 인내하고 침묵하고 자신을 많이 드러내지 말라고 한다. 조직의 초심자는 입을 꾹 다물고 주위를 살피라는 내용은 현대 사회의 초 일류 기업에서의 행동요령과 다르지 않다.


 명령을 내리는 자리에 오르기 전에는 복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유능하건 유능하지 못하건, 복종하는 법을 익히지 못한 자는 부하로 삼지 말라. 특히 그 부하가 유능한 자일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하다...... 두목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어서 말해 보라는 요구가 있을 경우에 말하되 ‘두목의 입장’에서 말하도록 하라. 그런 상황이 아닐 때에는 계속 침묵을 지켜라.


두목이라는 단어를 상사로 교체해서 읽어보자. 인재가 자산이라는 요즈음에는 회사에 대한 로열티(loyalty)를 상당히 중요한 덕목으로 보고 있고, 상사의 입장에서 말하라는 얘기는 오래된 선배가 회사의 생활에서 성공하는 비법이라고 알려주는 이야기들과 흡사하지 않은가. 보고서를 쓰더라도 상사의 입장에서 쓴 보고서여야 하고, 반대의견을 제시한다면 상사가 말한 그 안건에 대한 반대가 아닌 상사가 일을 진행하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가지 난관에 대한 반대_거기에 대한 대안도 있으면 좋다_를 담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인간성은 예측 가능하다. 인간은 자극과 동기에 반응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구시대의 가치 기준을 믿는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 기준 가운데 주요 기준은 탐욕과 공포심이다.


마피아와 기업의 조직이 다르지 않은 것은, 구성원이 인간이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조직구성원들이 믿는 가치 기준이 탐욕과 공포심이라는 말에 순간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탐욕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성장욕구 확장이고, 공포심은 사람관리 비결의 요체인 존경심의 다른 표현_책에서는 공포심은 존경심이 절정에 달한 상태라고 한다_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극단적인 비약은 아닐 것이다.


 효과적인 시간관리란 일하는 순간순간을 최고의 시간대로 만든다는 걸 의미한다. 동시에 하루 중의 몇 시간, 일주일 중의 며칠, 일 년 중의 몇 주일은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대를 확보한다는 걸 뜻한다. 이는 일벌레를 제외한 모든 이에게 효과적인 시간관리의 목표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영리하게 일하되 무리하게 하지 말라.


시간관리를 잘 한다는 것은 짧은 시간이라도 그 순간을 최고의 시간으로 만들기위해 열정을 다하라는 말로 들린다. 하루를 25시간으로 늘릴 수 없다면 자기를 둘러싼 일들을 모두 떠안지는 말자. 위임이 가능한 일이라면 위임하고 자신이 최선의 열정을 다할  수 있는 부분에 쏟아내는 것이 상식선에서 접근이 가능한 시간관리가 아닐까. 저자는 다른 사람에게 갈 수록 많은 일을 더 위임하라고까지 말한다. 차후에는 그 사람을 관리하는 것으로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적이 없는 사람은 자질이 없는 사람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예수조차도 수없이 많았다.

항상 최악의 적을 염두에 두어라. 그러면 좀처럼 그릇 판단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복수는 기껏 잘 먹어 봤자 차가운 음식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사회생활하면서 적이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그렇다.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적은 존재했다. 성인의 경지에 오른 이들도 적이 즐비한데, 실수가 나오기 마련인 일반사람들은 오죽할까. 단, 사회_조직_생활에서는 최악의 적을 염두하고 적을 두려워해야 더 큰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졸개들은 대부분 자신이 어느 정도 가치 있는 인간인지 잘 모른다. 주로 부관들을 통해서, 졸개들에게 자신이 다소나마 가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줘라......말을 바꾸면, 당신을 위해 행하는 일로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앞에서 두목이라는 단어를 상사로 바꿔 읽어보았듯이, 이번에는 졸개라는 단어를 직원으로 바꾸어서 읽어보자. 맡겨진 일에 자발적으로 열의를 갖게 만들어서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끼도록 만들라는 말인데, 자신이 직원이라는 위치에 있다면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 경영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좀더 자극적인 말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외부인이 당신의 조직원에게 이의를 제기했을 경우에, 그가 누구건 상관없이 당신의 조직에 속한 자가 늘 옳다. 외부인이 아니라 당신의 졸개한테 잘못이 있을지라도 당신의 졸개가 옳다. 잘잘못은 나중에 당신과 졸개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따지면 된다.


일상 속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늘 일어난다. 그런 의미에서 잘잘못에 상관없이 당신의 조직에 속한 자가 늘 옳다라는 말은, 사람을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중요한 이야기이다. 그들의 이익과 당신의 이익을 동일시 할 수 있고, 조직원의 충성심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하는 내용인 것이다. 앞서에도 말했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사람을 관리하는 자리에 올라간 이들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임과 그 위임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 사람임을 잊지 말자. 


모든 규칙은 독단적인 경계선일 뿐이어서 모험심이 강한 사람들이 걸려들게 되어 있다. 규칙을 깨려고 하는 자들, 이들이 결국에 가선 가장 우수한 직원임이 밝혀진다.


규칙은, 여기까지는 안전하다라는 경계선(Borderline)을 알려준다. 하지만 안전한 경계 안에서 안주하고만 있다가는 도태되기 마련이다. 안정화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어떤 사건도, 어떤 성장도 일어나지 않는다. 규범을 어기라는 얘기가 아니다. 열정적으로 기존 규칙을 더 진화시켜 자신의 것으로 해석할 때 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시행하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피를 부르는 야만적인 행동은 적의 완전한 궤멸을 목표로 한 것이라는 얘기다. 성공을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를 마음이 없는가? 친절한 사내, 좋은 사내가 되려고 해서는 사무실 바닥에 고급 카펫을 깔 날이 요원하다. 사랑받기를 원한다면 차라리 개를 한 마리 키워라.

 권력투쟁에서 도덕성 운운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얘기이다. 조직 내부의 적이건 외부의 적이건 그들은 당신이 그들을 바라보는 관점과 마찬가지 관점에서 당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당신을 해치려고 하는 자신의 행동을 고결한 행동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권력 투쟁에서 당신은 전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하며, 가능한 한 목표에 이르는 지름길이자 경제적인 길을 모색해야 한다.


지독히도 현실적이고 원색적인 책이다. 인간의 본성인 탐욕과 허영, 공포를 통한 역학관계의 처세술 이야기들이다. 책을 덮는 순간,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사마천의 사기를 다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군상의 집합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르지 않았다. 직장을 총성없는 전쟁터라고 하지 않았던가. 총성있는 직장을 가진 자들이 마피아다. 실체화된 무기를 가지고 있는 자들과 실체화된 무기 대신 이성과 논리로 경쟁자들과 싸우는 현대의 직장인들에게 원색적으로 조언하는 '마피아 경영학'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를 포함한 사회에서 성공이라는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이라면 아래 문장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여기 문장 말미에 있는 “당신”이 꼭 나였으면 하는 바람과 다짐으로 말이다.  


 권력은 인간한테 암세포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권력을 손에 넣으면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해지면서, 이전까지 지니고 있었을 쓸만한 여러 재질이 자취를 감추는 일이 벌어진다. 결국 조만간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느낌만이 남는다, 완전히 안으로 웅크린 자아만이 남는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자는 극히 드물다. 그렇다. 당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하라. 

Posted by 까망봉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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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두근거리는 삶을 살아라/ 마이크 맥매너스/ 시대의 창/2011 




 논어의 위정편에 나오는 구절에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라는 말이 있다. 70세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法度)에 어긋나지 않았다라는 말인데, 과연 그때에 이르르면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을까. 결국 70세에나 이르러서야 내가 원하는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일까  간혹 궁금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생겨나는 불화들의 대부분은 하고 싶은대로 하지 못해서 생겨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세상 어디에 누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느냐? 그냥 적당히 맞추면서 사는 거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들을 해준다. 과연 세상은 그렇게 타협하면서 살아야 하는 곳인가? 혹시나 우리는 만들어진 사회적 통념을 제대로 바라보지않고, 그 말이 맞는지 안맞는지 따져 본적이 있을까?


 가슴 두근거리는 삶을 살아라는 거기에서 출발한 책으로 보여진다. 제목처럼 가슴 두근거리는 삶이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에 열정을 쏟아부으면서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 사회적 통념에 휘둘리지 말고 본인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가고 싶은 길을 가면, 가는 길에 어느정도의 등락은 있겠지만 결국에는 그 길을 제대로 걷게 되고, 거기에 따른 안정과 본인의 희망에 근접해간다고 말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라

당신의 재능과 기술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뭔가를 달성하려고 억지로 의욕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능력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절대 기준이 될 수 없다.

결단을 내리기에 앞서 한참을 망설이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다.

당신의 꿈은 모두 이루어진다.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절대 포기하지마라.

목표를 세우기보다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시간을 핑계 삼지 마라. 그것이 무엇이든 시간은 충분히 주어진다.

간절한 바람이 있을 때 그것이 소망임을 확신하고 시종일관 그것만을 생각한다면 그 바람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당신은 이 말에 동의하는가?


 언젠부터인가 책의 서문을 주의 깊게 살피게 되었는데, 서문에서 흥미를 일으키지 못하는 책은 마지막에 가서도 그다지 감흥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책은 서문에서 기존의 관념적인 정설(?)에 반기를 들면서 시선을 집중시킨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죄의식을 해방시켜 주면서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시종일관 어느 문제에서도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_우유부단하다는 나쁜 말도 있다_ 나는, 결단을 내리기에 앞서 한참을 망설이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라는 말에 안도와 희망을 얻을 수 밖에 없었다. 적어도 나는 서문만으로도 가슴두근거리는 삶에 대한 호기심이 꿈틀되기 시작했다.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몸과 마음이 흥미와 호기심을 좇아 움직여야 한다.


 자연스러움. 무엇을 하던 간에 자연스러운 행동은 갈등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우리 본래의 모습은 어린아이같은 원초적인 흥미와 호기심이 아니었던가. 직관을 무시하지 말고 스스로 마음에 끌리는 것을 좇아가는 것이 본래의 모습으로 가는 첫 단계로 보여진다.


내가 많은 스트레스로 괴로워하고 인생의 균형을 잃고 흔들리게 된 배경에는 사회통념이 되어버린 잘못된 사고와 생활방식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사회 통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그 결과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인생의 방향성을 잃고 있다. 이런 사회 통념은 겉보기에는 이치에 맞고 실용적인 지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삶의 중심을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가 제대로 살펴보지 않으면서 받아들이는 사회 통념이 얼마나 나의 삶을 많이 흔들고 있을까?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훌륭한 사회인이 되어라, 돈이 되는 직업을 찾아서 출세해라, 문제를 일으키거나 옆길로 새지마라 등등 정해진대로 살면서 세상과 동화되고 그것을 당연시 여기라고 통념들은 말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자기를 타이르면서 내가 하고 싶은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간다? 이런 욕구와 삶의 뒤틀림이 조금씩 쌓여서 인생의 불균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이 책에서는 책임감, 의욕, 적성, 능숙함, 결단, 타협, 우선순위, 현실성에 대한 누구나 믿고 있는 거짓말-사회 통념이라고 봐도 무관하겠다-에 대해서 아래의 내용으로 반기를 들고 있다.

1. 책임감 - 스스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책임 있는 행동이고 그 사람이 지는 최고의 책임이다.

2. 의욕 - 하기 싫은 일에 억지로 의욕을 끌어올리지 마라.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비로서 창조력을 낳는다.

3. 적성 - 적성에 맞다고 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면 굳이 하지 마라. 적성에 맞지 않다고 해도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면 반드시 시도해보라.

4. 능숙함 - 능숙하지 못하더라도 열정이 있다면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5. 결단 - 결단은 될 수 있는 대로 천천히 내리는 것이 좋다.

6. 타협 - 하고 싶은 것은 모두 할 수 있다. 아니,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모두 해야 한다. 실제로 풍요로운 인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은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하면서 살고 있다.

7. 우선순위 - 우선순위는 인생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8. 현실성 -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을 들어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마라. 실재하는 현실은 오직 하나, 당신이 자신에게 창조해주는 현실밖에 없다.


 너무 이상적인 말들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이 스스로를 죄의식에서 해방시키고 내면이 시키는 욕구에 대해 달려가라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짧지만 의미를 심어주기에는 충분한 문장들이 아닐런지 모르겠다.


세상이 말하는 책임감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죄책감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죄책감은 두려움의 감정서 생겨난다. 세상이 기대하는 일을 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좋아할 것인가...돈이 없으면 아무도 나와 어울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좋아하는 일은 나이 들어 정년퇴직한 뒤에 하자...


 자주 드는 생각이고 주변에서 많이 들었던 익숙한 말들이다. 이에 저자는 꿈을 좇는 삶-자신의 소망과 욕구를 충실히 이행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책임 있는 삶이라고 강변한다. 자신의 소망과 욕구를 이행하면서 얻는 활력으로, 결국에는 주위에까지 밝은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우리 안에는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쫓으려는 욕구가 있고, 그 안에 존재 의의가 있으므로 그것을 살려 사회와 인류에 공헌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책임감이고 존재의 의의라고 말이다.


잠재의식이 틀린 경우는 없다. 당신의 중심에 망설이는 기분이 있고 도무지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경우, 그것은 잠재의식에서 보내는 메세지다. 잠재의식은 타협을 모른다. 받아들일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둘 중 하나다.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하지 말라는 얘기.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결단을 내려야 할때 망설임이 든다면 직관적인 본인의 내면의 목소리에 맞추어서 결정하는게 되려 정답에 근접할 수 있다.


인생이 타협의 산물이고 양자택일의 결과라는 말이 아직 존재하는 것은 당신이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인생의 디자이너이자 엔지니어이고 설계자다. 자신의 꿈을 충족해줄 인생을 직접 디자인해보자.


흑과 백 밖에 존재하는 것이 세상이 아니고 모든 결정이 양자택일의 논리가 아닐진데, 다른 하나를 위해서 적당히 타협하고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그 원인이 내가 그렇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라면?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모두 얻기 위해서는 사회적 통념이 아니라 자신의 유연한 사고와 전혀 새로운 사고방식만이 필요할 뿐이다.


하나의 꿈만을 언제나 우선순위로 두면 반드시 인생의 균형이 깨진다. 또 모든 일에 우선순위를 매기는 사람은 인간이 여러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복합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인간을 마치 공장의 기계처럼 여기게 된다.


 의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슨 일을 하던 간에 우선 순위가 필요하다라는 말은 항상 듣지 않았던가.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것은, 일을 순서대로 진행하는 것과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집을 지을때는 토대부터 지붕까지 순서대로 짓지만, 그 중 중요하지 않은 것이 어디있냐는 말이다. 또, 꿈_하나의 꿈이 아니다_이란 우선 순위를 매길 수가 없는 것이다. 책 ‘정의란 무엇인가’의 서두에 나오는 한 명의 생명과 여러 명의 생명 중 누가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이루고 싶은 여러 꿈 중에 소중하지 않은 것이 어디있겠는가? 순위를 매기는 순간, 하위 리스트에 있는 꿈들은 실천할 수 있는 기회조차 사라진다.


누군가 현실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할 때 그 말의 진짜 의미는 ‘당신이 하고 싶은 것 외에 다른 일을 알아보라’는 뜻이다.

 알고 있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문장이다. 현실적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부정의 의미는 자신의 꿈조차도 철저히 재단해버리기 일쑤이다. 어떻게 하면 꿈을 향한 길에 있는 이런 의식의 장애를 뛰어 넘을 수 있을까? 저자는 현실적이라는 말에 휘둘리지 말고 그것을 결정하는 잣대는 바로 본인의 주관이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역시나,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내면의 의지와 욕망을 믿고 따르는 것이란 말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꿈의 실행-저자의 소스 프로그램-을 위해서 6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1. 꿈의 리스트를 적어보라.
  2. 모두 당장 동시에 실행하라.
  3. 같은 양의 정열을 쏟아부어라.
  4.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라.
  5. 목표를 세우지 마라.
  6.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직관을 믿어라.

 6가지 방법 중 나의 시선을 사로 잡은 건 동시실행과 목표를 세우지마라, 그리고 직관이라는 말이었다. 모두 당장 동시에 실행하라는 말은 좋아하는 일에, 하고 싶은 일에, 우선순위는 없다는 말이다. 저자는 다이아몬드 가공을 예를 든다. 다이아몬드를 가공할 때 어느 한면이라도 소홀히 하면 그 다이아몬드는 형편없는 가치로 전락한다.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정리하고 동시에 실행하면, 새로운세계가 열릴것이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한번에 하나씩, 그리고 불가능한 것은 버리면서 가는 것이라는 말은 관념의 세계가 만든 것이라 한다. 나의  꿈에 소중함의 순서는 있을 수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그 하나 하나가 개별적으로 모두 다 소중한 것이다.


 목표를 세우지 마라는 이전에 본 ‘평범했던 그 친구는 어떻게 성공했을까’에도 언급되었던 내용이다. 목표에 사로잡히면 귀중한 체험이나 멋진 기회를 놓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찾아오는 패배감과 강박감에 시달린다.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은 다른 많은 욕구를 포기해야한다는 뜻이므로, 목표가 아니라 나아갈 방향을 정해놓고 한걸음 한걸음 가는 것이 우리를 승리로 이끌어 낼거라고 한다. 목표가 아닌 방향이라는 말, 심히 공감이 될 수 밖에 없다.


 직관의 길을 따라라, 내면의 소리를 들어라는 이 책을 관통하는 이야기로 보인다.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결정을 믿고, 하고 싶은 바대로 따라가면 꿈에 이르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단, 감정과 직관을 혼동하는 것만 주의한다면 말이다. 

 

가슴 두근거리는 삶은 나의 존재 의의에 대해 되뇌여보는 내용이다. 결국 나 자신 안에서 소망과 열정을 끄집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덮고 있는 사회적 통념을 걷어내고 나의 본질을, 나의 욕망을 분명히 하는대서 가슴 두근거리는 삶은 시작된다. 우리는 아직 자기 자신을 덜 믿고 있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가 묻는 모든 답은 질문하는 본인이 가지고 있다라는 말을 얼핏 들은 기억이 난다. 나의 욕망을 끄집어내서 분명히 하고 직관-자기 내면-을 믿고 내 안에 숨은 나의 능력을 깨워서 실현해보자.


 ‘당신이 진정 원하는 것은 오히려 그 꿈이 실현됐을 때, 보이는 당신의 모습이 아닐까’ 라는 본문의 문장을 떠올리며, 오늘 나는 일단은 책에 나오는대로 꿈의 리스트 작성으로 한걸음을 떼어 본다, 나의 꿈을 향해.



Posted by 까망봉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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