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대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제리 하비/ 엘도라도/2012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은 조직 속에 포함되어 살아간다. 처음은 가족, 학교 그 다음은 회사로 발전되어 간다. 창의성을 발휘하면 박수를 쳐주는 시간 속에서 점점 창의성은 고사하고 조직의 룰에 따라 시키는 대로만 해라로 점점 변질되어간다. 그러나 그 왜곡되어가는 상황을 인지하면서도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수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모난 정이 돌을 맞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한국에서는  대다수의 무리 속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을 다른 나라보다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내가 말하는 방식은 '이야기를 말하는'방식과 같다. 그 이야기가 사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문제는 내가 하는 말이 과연 나의 이야기, 즉 나의 진실이냐 하는 것"



생각되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서문을 읽다가 이 문장에 눈에 들어왔다. 나의 진실이냐 아니냐. 저자는 자기의 말이 너무 복잡한 경향이 있고 설교조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에 부정적이었지만, 이내 인정하기로 한다. 그래 나도 복잡하게 말하는 경향이 있으니깐, 그냥 그게 내 말이라고 인정하자. 문제는 이야기가, 말이 진.실.하냐는 것이다. 문제의 해결하는 과정은 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이 책의 원제는 애빌린 패러독스이다. 저자가 처가집에 가서 장인어른이 시작한 애빌린에 식사하러 가자는 말에 모두 동의를 하고 왕복 100여킬로를 다녀온다. 탈진한 그들은 저자의 “그래도 괜찮았죠?”라는 말에 사실은 원래 가고 싶지 않았다며 장인은 딸부부를 위해, 저자는 장인어른을 위해 싫지만 다녀온것을 토로하면서 본질적인 의도와는 다른 잘못된 결정에 모두 동참하면서 참담한 결과를 가져온 것을 에빌린 패러독스라 명명했다. 



애빌린 패러독스에 빠지는 5가지의 원인은 불안감, 부정적인 상상, 실질적인 위험, 소외에 대한 두려움, 성공과 실패의 심리적 역전이라고 한다. 조직에서 분리될까봐 두려워하는 인간의 소외감이 불러일으키는 것이 주 원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문화가 기술, 경쟁, 개인주의, 일시성, 이동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기 때문에 외로움의 공포는 자주 경험하지만 유대관계가 주는 만족감은 거의 경험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소외의 현실은 배웠지만 유대관계의 상호 호혜적인 기술은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고, 그 결과 이미 지구상에서 멸종한 공룡들처럼 자기 파괴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성향이 있는 조직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잘못된 의사결정인 줄을 알면서도 조직에서 소외될까봐 자신의 생각과는 반대로 동의하면서 일을 몰고가는 조직원들. 어디서나 쉽사리 볼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자신의 경험담에 비추어 앞에서 말한 에빌린 패러독스라고 말한다. 에빌린 패러독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처한 절박한 상황에 능동적으로 맞서서 스스로 해낸 인생의 승리를 맛보라고 한다.



우리는 모두 혼자다. 가끔 사랑이나 감동, 창의적인 일로 고독감에서 탈출하기도 하지만 그런 환희의 순간들은 모두 우리가 끌어다 모은 빛의 덩어리일 뿐, 그 빛의 가장자리에는 칠흑같은 어둠이 있을 뿐이다.우리는 모두 혼자 죽는다.



글을 읽는 내내 사람의 소외감에 대해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사람은 혼자라고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소외감이라는 느낌을 경험해본적이 있는 나로서는 혼자라는 말에 대해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을 객관적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대하라. 영국의 정신과 의사인 로널드 D.랭은 "사람을 개인화된 주체(주관적으로)로 대하지 않고, 비개인화된 객체나 사물(객관적으로)로 대하는 것이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병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황소케구리들은 케구리들을 객관적으로 다루려 한다. 그들은 케구리들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그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을 배제한 대가로 자신도 하나의 대상, 즉 사물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성의 본질을 스스로 부정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부분의 조직이 조직원을 케구리-사회는 습지로 묘사-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케구리와 달리 사람은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고 사람을 물건으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정의한다.

객.관.적.이 눈에 띄었다."객관적으로 보자면,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객관적으로 얘기하면" 나는 얼마나 많은 객관을 남발하고 있던가. 객관적으로 말하는 그 상태가 객관적이지 않은데 말이다. 남발하는 객관성 속에 분명한 것은 나의 본질 또한 흐려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사리에 맞게 행동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권위에 대한 복종을 얘기하면서, “나는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라며 나치에 적극 동참한 아돌프 아이히만과, 성경 속에 하느님의 명령에 아들을 바치려는 아브라함의 비 이성적인 얘기가 예시로 나온다. 이 둘은 관료주의의 상징으로  모든 행동의 근본이 되는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암묵적으로 지지함으로써 조직에 속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관료주의의 무조건적인 복종을 깰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시 원론적인 얘기로 돌아간다. 저자는 그  맹목적인 신념을 깨뜨리기 위해서 분연히 일어나기를 말하고, 무엇이든 자기가 할 수 있는 실질적인 행동으로 옮겨가서 다른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Posted by 까망봉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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