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무엇인가 /셸리 케이건/ 엘도라도/2012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그 근본적인 명제에 대한 질문.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면 죽음은 '나쁜'것일까?


죽고 나면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라진다고 상상해보자. 이 말이 옳다고 한다면 죽음은 결코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일단 내가 죽었다면 죽음은 절대 내게 나쁜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존재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죽음이 내게 나쁜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내게 아무런 피해를 입힐 수 없는데 어떻게 죽음을 나쁜 것이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살아있는 동안에도 죽음은 당연히 내게 나쁜 것이 아니다.


프롤로그부터 형이상학적인 질문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죽음에 도달하는 과정이나 슬픈장면을 넣지 않았다는 것이 한결 책을 잡기 편하게 해주는 것 같다. 또 철학적 사유에 기반으로 한 질문들이 맘에 든다. 논란의 여지가 상당히 많은-특히나 종교적으로-주제를 가지고 시작하게 하는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데카르트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이성적, 논증적으로 풀어가는 서문부터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하는 것 같다.


육체적 죽음 이후에 계속 존재할 수 있을지"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육체적 죽음 이후에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 즉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구성돼 있으며....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질문에서 부터 시작을 한다. 책에서는 인간을 육체와 영혼으로 보는 이원론적 관점과 인간은 한가지의 요소-육체-로 이뤄져 있다고 보는 일원론적 관점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원론자에게는 인간은 영적인 존재로, 죽음이라는 건 육체와 영혼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린는 사건이라 하고하지만, 일원론을 주장하는 물리주의자들은 인간이란 다양한 P기능-생각하고 판단하고 느끼고 대화하고 사랑하는 등-을 수행하는 육체라고 말한다. 이들에게는 죽음이란 P기능의 종말이다. 말이 말을 부른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쉬이 넘어가지지 않는다. 한 때, 카톨릭 사제를 꿈꾸웠던 자로서 이원론자들의 이야기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왔었고 의심을 품지 않았다. 불편하다.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던 것에 대해 퀘스천 마크를 들어보이자 사고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원론자들의 주장이 근거가 자꾸 목에 걸린다. 논리적인 증명으로 풀어나가는 문제들만 보아온 이과생의 찌꺼기 지식이 일원론자의 주장에 눈이 가게 만드는 것인가?


1)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

2) 결정론에 지배를 받는 존재는 자유의지를 가질 수 없다.

3) 순수하게 물리적인 존재는 결정론의 지배를 받는다.

4) 그러므로 인간은 순수하게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다.(영혼+물리적인 존재의 조합이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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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은 물리학의 근간을 이루는 법칙들 모두 '확률적'이라고 설명한다. 즉, 기초 물리학의 세계에서 결정론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다.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명제들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순수하게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므로 -영혼+육체(물리적인 존재)라는 말-영혼은 존재한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각 명제가 참이어야 한다.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가 중요하다. 책 속에서는 이원론자도 일원론자도 확실히 증명할 수 없는 상태라 한다. 즉, 무승부의 상태. 

물리론자의 반론 중에 나온 것이 기초물리학의 근간인 양자역학. 또 나왔다. 양자역학. 불확실성의 원리. 우물에서 입자가 존재할 확률. 갑자기 양자역학이 눈에 보이자 친한 친구를 만난듯한-물론 그 친구입장에선 나랑 친하지 않다-느낌이다. 삼천포로 빠지는 순간...

일원론자와 이원론자, 자유의지와 결정론, 양립주의, 양자역학까지...

별안간, 꿈에 불확정성의 원리를 주창한 하이덴베르그 아저씨가 나올 거 같다....


플라톤은 완벽하게 아름다운 존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플라톤의 표현을 빌리면 아름다움을 '띠고'있다. 다양한 차원에서 아름다움을 '공유하고'있다. 하지만 아름다움 그 자체와는 다르다.


완벽한 아름다움, 완벽한 정의 나 완벽한 원형은 상.상.해볼 수는 있지만, 일상적. 경험적 세상 속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다라니...완벽함은 오로지 상상과 이성적 사고에서 기반한다고 한다. 글을 따라 읽으면서 완벽한 아름다움까지는 못갔고 완벽한 원형은 만들어보았다. 그렇구나...완벽한 원형은 상상은 가능해도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것을 다시한번 실감하게 해준다.


살아있을 때는 죽음이 없고 죽었을 때는 우리가 없기 때문이다...지금 내가 살아있다면 죽음은 내게 나쁜 것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이미 죽었다면,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역시 나쁜 것이 될 수 없다.(내가 죽고 없는데 대체 무엇이 내게 나쁜 것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얼핏 보면 궤변론 같고, 뫼비우스의 띠마냥 안과 밖이 다를 것 같지만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이 문장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  죽음 그 자체는 죽은 본인에게는 나쁜 것이 아니다-이성적으로 사고해보면- 다만 죽음으로 인해 살아있을때 누릴 수 있는 기쁨들에 대한 박탈감과 남겨진 사람들의 이별에 대한 슬픔이 나쁜 것이리라. 하지만 그것은 존재하고 있을 때의 얘기로, 내가 나쁨을 지각 할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점점 더 저자의 인간이란 P기능을 수행하는 육체라는 물리론으로 빠져 드는 것 같다.


누군가 진지하게 자살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은 정말로 자신의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


자살을 선택하고자하는 이유는 대체로 삶이 죽음보다(비존재하는 것) 괴롭다고 느낄때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런 선택으로 떠오르는 때는 대체로 당사자가 심각한 고통을 겪거나 감정의 나락에 떨어져 있을때 일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말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것이다. 뒷 부분에서는 도덕성에 대한 관점에서도 자살을 살펴보지만,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자살은 최선의 선택이 아닐 것이라는 늬앙스를 받게 된다. 자살에 대한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말 처음부터 혼란이 오는 것은 ,인간이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먼저 떠오른데 말이다.


죽음이라는 인간사회에서 터부시되는 주제를 철학적인 접근으로 바라본 책이다. 앞의 8장까지는 형이상학적인 철학을 다루고 있어서 읽는데 속도가 쉬이 나지 않았다. 이후로는 내용이 재밌어지고-케이건 교수가 직접 그린 그림들도 나온다- 좀더 쉬워지는 것 같다. 뭔가 비논리적이지만 한번도 그 명제에 대한 의문을 가져보지 못한 '죽음', 그 곳에 철저한 논리의 사유를 통한 과감한 돌직구. 내가 한번도 의심을 품어보지 않은 그 근본적인 명제들에 대해서도 다시금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책이다. 


Posted by 까망봉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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